이런저런 말씀

문창극, 이리 역사인식이......

항샘 2014. 6. 18. 22:03

11일 저녁 KBS ‘9시뉴스’를 통해 보도된 문창극 차기 국무총리 후보자의 망언은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찌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 하겠다. 한국사회의 이른바 수구세력 일각에서 흔히 내뱉는 얘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조갑제, 복거일 등 극우논객이나 소위 ‘뉴라이트’로 통칭되는 세력 가운데는 이보다 더한 얘기를 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일부 넋 나간 지식인 가운데는 일제 지배가 축복이었다거나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을 일본서 수입해 마치 선진 학설인 양 떠드는 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이 무리 중에서 별종으로 불리는 김완섭 같은 자는 유관순 열사를 ‘여자깡패’, 안중근 의사나 김구 선생을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는 판국이니 더 말해 뭣하겠는가.

KBS 보도에 따르면, 문 후보자는 지난 2011년 자신이 장로로 있는 온누리교회에서 교회 신자들을 상대로 한 특강에서 ‘신판 친일파’로 불릴만한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 후보자는 이날 강연에서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와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취지로 발언한 것을 비롯해 1945년 8.15 광복은 독립운동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거나 감리교단 소속 신자인 친일파 윤치호를 비호한 발언, 그리고 제주4.3사건을 공산주의자들의 반란이라고 강변했다. 이밖에도 우리의 원수와도 같은 일본이 우리의 이웃국가인 것을 두고 ‘지정학적 축복’이라거나 우리민족의 상징은 게으른 것이라는 등 극도의 민족 비하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같은 내용은 그의 강연 동영상으로 확인된 것이니 그 자신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먼저 전제할 것은, 한국인은 누구나 사상과 학문의 자유가 있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다. 나아가 출판과 집회. 결사의 자유도 보장돼 있어 누구나 자유로이 자신의 생각과 이상을 밝히고 펼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우파진영의 ‘사상검증’ 회오리 속에서 진보적 성향의 좌파인사들은 국가보안법의 법망에 걸려 희생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이는 한국이 반공(反共)을 국시(國是)로 하는 국가이자 우파 주도의 체제하에서 자행된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헌법이 보장한 사상의 자유를 침해한 위헌적 행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으나 현실은 늘 법대로 행해지진 않았던 것 같다.

이런 전제를 기본으로 한다고 쳐도 문 후보자의 발언은 적절성 여부를 떠나 사실과도 다르고 그 관점도 극도로 왜곡, 편향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발언내용을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비판, 지적하자면 논문 한 편으로도 모자랄 지경이겠으나 '단평(短評)' 취지로 시작한 글이니 여기서는 핵심만 몇 간추려 지적하기로 한다.

우선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와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대목. 기독교 사상에서 매사(범사)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이 기본 교리라고 하나 이는 종교적 관점일 뿐 세상사에서 두루 통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나치 학살이나 일제의 무자비한 강압통치조차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는 교조적, 원리주의적 발상에서 기인한 기독교 사상의 왜곡이요, 변질된 형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기독교 신자였던 유관순 열사가 일제 통치에 항거한 것이나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항거해 순교한 주기철 목사 같은 분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꼴 밖에 되지 않는다.

또 8.15 광복을 두고 “독립운동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수많은 애국선열들은 순리를 거스르면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 어쩌면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셈이 된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건국훈장은 항일투쟁가들이 받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받아야 하며, 광복절, 3.1절은 모두 없애고 12월 25일 성탄절을 국경일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국립묘지에 애국지사 묘역을 설치할 필요도 없고 교과서에서 독립투쟁사를 가르칠 필요도 없게 된다. 대체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특정 종교 교리에 기반한 개인적인 주장이라고 해도 보편적인 상식과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주장은 언어도단이다. 한 마디로 말해 그의 이런 주장은 궤변이자 애국선열 모독행위에 해당된다.

윤치호의 말년 모습


윤치호를 비호, 두둔한 것은 무지에서 비롯한 측면이 커 보인다. 초기 독립협회에서도 활동했고 한 때 민족적 선구자요, 계몽운동가로 불렸던 윤치호는 근대 역사인물 가운데 전형적인 기회주의자요, 대표적인 대세순응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처음 그가 관심을 가졌던 나라는 중국이었으나 이내 중국을 비판하고 미국에 탐닉, 친미파가 되었다. 그러다가 일제 말기에는 다시 ‘대일본’에 빌붙어 친일파로 변신하였으며, 해방 직전에는 일본 귀족원 의원에 선임돼 골수 친일파의 면모를 과시했다. 일설에는 그가 친일의 죄과를 괴로워하다가 해방 후 자살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 윤치호를 두고 문 후보자는 “(윤치호가) 친일은 했지만은 기독교를 끝까지 가지고서 죽은 사람”이라거나 “(윤치호는) 영어로 일기를 쓰는 사람”이라면서 그의 영어 실력을 칭찬했다. 당시 기독교 지도자였던 윤치호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은 개인적 신앙생활은 물론이요, 일제의 기독교 침탈을 막는 것이었으나 그는 이를 다하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해방 후 에 비난을 사기도 했다는 사실을 문 후보는 모르는가? 또 그가 영어를 잘한 것은 개인적인 역량도 없진 않았겠지만 당대의 세도가이자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미국 유학의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적절하지 않겠는가? 영어라면 주미공사관에서 두 차례나 근무했던 이완용도 빼놓을 수 없는 실력자였음을 밝혀둔다.

제주4.3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전형적인 극우파들의 관점 그대로다. 초기에 소수의 공산주의자들이 참여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쳐도 사태의 근본 배경은 미군정의 무능과 친일경찰들의 폭정에서 기인했다는 것 또한 역사적 사실이다. 문 후보자와 같은 시각은 제주도민을 전부 빨갱이로 몰아 이념의 굴레를 덧씌우는 작태이자 이제 겨우 아무는 상처를 덧나게 하는 언어폭력에 다름 아니다. 지난 정권에서 희생자와 그 유족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었고, 국민을 대표해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한 바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시절 제주를 방문해 참배한 적이 있고, 심지어 금년(2014년) 1월 17일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4월3일을 ‘제주4.3기념일’로 입법예고를 하기도 했다. 이념대결의 굴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 문 후보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강조해온 ‘국민대통합’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인물이라고 하겠다.

일본이 우리의 이웃국가인 것을 두고 ‘지정학적 축복’이라고 한 대목은 그의 국적을 의심케하고도 남는다. 고대 이래로 일본이 한반도에 은혜를 베풀거나 이득을 준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역사 속에서 그들이 한민족을 괴롭힌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들은 한국전쟁 당시 전쟁특수로 경제재건의 기틀을 다진 잇속 밝은 집단일 따름이다. 한 마디로 말해 우리 민족의 피를 빨고 고통까지 즐긴 집단이랄 수 있는 일본이 대체 우리에게 뭘, 어떻게 잘 해 주었기에 ‘축복’이라고 하는가? 일제 통치가 조선민족에겐 축복이었다는 한승조 전 고려대 교수의 망언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그에게 나는 ‘신판 친일파’ 딱지를 붙여주고 싶을 따름이다.


끝으로, 우리민족의 상징을 ‘게으른 것’ 운운한 민족비하 발언은 돌을 맞아 마땅하다고 본다. 그의 이같은 발언의 뿌리는 친일파, 조선총독부, 식민사학자들에게서 기인한 것이다. 상해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의 편집장을 하다가 돌연 귀국한 춘원 이광수가 1922년 5월호 <개벽>지에 발표한 ‘민족개조론’, 이듬해 동아일보에 연재한 ‘민족적 경륜’ 같은 것이 바로 그 원조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춘원의 이같은 기조는 소위 실력양성론, 자치론으로 상징되는 김성수, 최린, 송진우 등 개량주의자들의 견해와 같은 것이다. '미개'한 조선민족은 독립을 할 능력이 없으므로 '개화'된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게 마땅하다는 식이다.

설사 조선민족을 개조시켜 보려고 했던 춘원의 취지가 순수했다고 쳐도 그런 생각의 뿌리는 조선총독부의 조선인 분열정책, 즉 일제의 식민정책과 맞닿아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 내부의 단점을 거론해 개선하자는 충정어린 지적(비판)과 주체성 없는 자기비하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물론 한민족이 모든 면에서 다 우수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세계사적으로도 높은 문화수준과 근면성을 인정받고 있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의 이런 민족관은 일본 극우파들의 ‘한국판 자학사관’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하겠다. 아직도 일제잔재 식민사관의 찌꺼기를 털어내지 못한 문 후보자는 한국의 총리보다는 일본 총리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까?

대학교수, 중견 언론인, 대형교회 목사, 대기업 경영자, 고위 공무원 등 소위 이 시대의 오피니언 리더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문 후보자 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는 현실을 깨닫자 분노를 넘어 씁쓸하기조차 하다. 명문대학을 나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면서 기득권을 누려온 그들의 머릿속이 겨우 이런 정도라면 결론은 우리나라 역사교육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고 얘기할 수밖에 없다. 특히 문 후보의 발언을 계기로 한국 기독교계는 일각에서 '개독교' 소리를 듣는 이유를 다시 한번 따져볼 일이다. 기독교계는 명예를  위해서라도 문 후보자 같은 사람은 출교시켜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기독교계의 반응이 기대된다.

'망언' 파문 후 12일 아침 밝은 표정으로 출근하는 문창극 총리 후보자


“8.15 광복은 독립운동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 대목을 두고 지하의 애국선열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실까. 어쩌면 의열 무장투쟁에 앞장섰던 약산 김원봉 같은 분은 관 뚜껑을 열고 뛰쳐 나와 문 후보와 밤새 맞짱토론이라도 한번 하자고 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안중근 의사도, 유관순 열사도, 백범 김구 선생도 요며칠은 통 잠을 이루지 못하실 것 같다. 참으로 송구한 일이다.

21세기, 문화강국과 통합과 소통의 리더십이 절실한 이 시점에서, 또 민족의 자긍심을 드높이고 나아가 우리민족의 창발성과 애국애족심을 견인해야할 지도급 인사의 덕목을 감안할 때 문 후보자는 부적격이다. 다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문 후보자가 이런 류(類), 이런 수준의 역사관, 세계관, 민족관, 종교관을 갖고 있다면 그는 국무총리는커녕 시골마을 이장 자리조차도 맡아선 안된다. 굳이 청문회까지 가서 국민들 열불나게 만들 필요없다. 오늘 당장 사퇴해야 한다. 그것만이 문 후보자도 국민도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