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에 자리잡은 조그만한 포구 법성포 굴비에고장 법성포 지금은 개발을 한담시고 앞바다 뻘바탕을 육지로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다 그옛날 조기 파시로 다랑가지가 벅실벅실하던 그시절은 다가고 앞바다는 엉망진창으로 변하여 포구에 구실이 퇴색되여 가고있으니 그옛날 그모습은 찿아보기가 어렵게 되여버렸다 한때 번창했던 법성진성[法聖鎭城]은 세월에 닳아서 성벽이 흔적만 남아 법성 포구가 훤히내려다 보이는 법성면 진내리 뒷산에 200여m 남아있는 성벽엔 푸른이끼 가돋아 세월의 무상함이 묻어있는 듯하다
법성진[法聖鎭]의 설치배경은 군대의 주둔을위해 법성포에 진을설치한것은 1514년[조선중종9년]으로알려져 있지만 사실법성포의 영화[濚華]는 이보다 1천여년이 앞선 고려초 조운[漕運]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법성은 영산창[榮山倉]과 더불어 전남의 두번째로 번창한 조세창[租稅倉]으로 법성 조창을 지키기위해 1514[중종9년]진성[鎭城]을 쌓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살펴보면 법성진성은 1514년에 축성하였고 당시둘레 1천688척 높이12척이었으며 한말때는둘레 3천62자 높이 8자7치로 기록되어 있지만 1514년 이전에 발간된 세종[世宗]실록지리지[實錄地理誌]에 법성포 만호진의 기록을 볼때 법성진은 고려말엽인 공민왕때 개설된듯 싶다 왜구의 해적질이 심했던시절 전남의 2대조창의 하나인 법성포에 수군을 배치하지 않았을리 없다 또한 진성안에는 향교[鄕校]와 동문 서문 홍문으로 3개의 문루와 조세검사장인 동조루[童槽]군기고 진창 환상고[還上庫] 조복고[漕復庫] 빙허정[憑虛停]복고창 군기창 등이있었다고 전하고있지만 흔적을 찿아볼수없다 특히 법성진은 동학 임란 등 숱한 난 을 겪어오면서 불에타 소실되고 성[城]의 흔적과 선창가의 샘 2개가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