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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호랑이는 멸종하지 않고 살아있다

항샘 2010. 7. 11. 19:14

2010년은 호랑이띠라고 방송매체에서 열심히 말을 한다
올림픽때에도 마스코트가 호돌이라는 사실은 우리나라 국민이면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런데 한국산 호랑이가 야생에 있나고 질문을 던지면 있긴 뭐가 있어
일제시대 이후로 멸종되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잠자다가 봉창뜯는 소리하나고 하든지 아니면 정신나간 사람이라고 말을 할 사람이
열에 아홉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한국호랑이는 야생에서 살아있다고 믿는 사람중에 한 사람이다
정말 살아 있다면 사람눈에 발견되지 않고 이렇게 오랜세월이 흘렀나고 당당하게 질문을
던지게 될 것입니다
질문처럼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다면 살아있네 멸종되었네 하는 논란거리에도 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원도 깊은 산중에 사는 주민중에서는 눈으로 보고도 보았다고 말을 못하는 이들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추론해 본다
멸종되었다고 다들 말을 하는데 아니요 내 눈으로 보았소 했다가는
올바른사람 대우받으며 살기에는 분위기상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얼마나 보기 힘들면
옛 선조님은 호랑이를 산신령이니 영물의 짐승이니 이산에서 저 산으로 넘어가는데 한발작이면
간다는 말이 있고 가랑잎한장에도 몸을 숨길수 있다는 말이 있을까?
올해가 호랑이띠이고 몇년전에 한국호랑이를 찿아
MBC방송에서 깊은 산속으로 호랑이찰영하러 갔었던 프로그램이 있었었다
백지연 아나운서 하고 제작진하고 용맹한 사냥개도 데리고 가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호랑이 연구가인가 정확한 것은 아물아물하지만
임승남씨가 시베리아서 연구하다가 찰영진 다친다고 긴급귀국해가지고 합류한 것으로
소개된 적이 있었는데
야간찰영시에 소백산인가에서 호랑이 추적을 하던중 산등성이 쪽에서 불빛이 보이고
용맹하던 사냥개는 숨소리조차 죽여가며 겁에 질린 모습으로 사람밑으로 파고드는 모습이 기억난다
제작진은 좀더 가까이 불빛에 다가가면 찰영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좀 더 가려고 하니
임승남씨는 더 이상은 어렵다고 제작진을 말리면서
제작진이 다칠수도 있으니 찰영은 여기서 접으라고 당부를 하며 오늘밤은 어떤일이 있어도
개인행동 하지 말고 한 자리에 꼭 붙어서 밤을 새워야 한다고 했던 모습도 떠오르고
산골주민 인터뷰에 의하면 어느 골짜기엔가 들어가면 굵은 동물뼈들이 있다고 했는데
호랑이전문가가 뼈를 확인하고는 멧돼지머리와 허벅지뼈라고 하면서
멧돼지를 공격할수 있는 동물은 호랑이가 유일하다고 말을 꺼내며 고양이과 동물은 항상 머리는
먹지 않고 남기는 습성이 있고 사냥을 해도 먹이를 한 자리로 가지고 와서 먹기 때문에
한곳에 뼈가 쌓인다고 한 기억도 있다
아마도 이 방송이 나간 이후로 심심치 않게 깊은 산속에 사는 주민중에는
가물에 콩나듯이 호랑이를 보았다고 제보하는 사람이 있는 거 같다
라디오에서 들은 것으로 기억되는데 주민이 제보한 장소에 가보면 호랑이 발자국이 있다고 했었다
발자국 길이가 10cm가 되면 호랑이 것으로 보아도 무난하다고 들었다
신기한 것은 출몰했다는 산에 가보면 야생동물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했었던거 같다
호랑이가 꿀꺽했다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해서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거 같다
정말 이 땅에 살아있다면 왜 사진한장 찍지 못했나고 태클을 걸어올 사람도 있겠지만
생활반경이 넓고 한번왔던 장소에 다시 나타나는 기간이 며칠길면 몇달 혹은 몇년만에
지나갈수도 있기에 한번 목격되었다고 다시 목격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일정한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번식기에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아마도 산골마을에 사는 주민에게 목격되었던 것도 이 시기일것이라고 생각된다
서식지는 일반적으로 서들(바위로 둘러싸여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곳)을 좋아하고
땅거미가 내릴 무렵에 행동을 시작하는 것으로 안다
내가 자란곳은 시골이었는데 이해 안가는 이야기들이 벌어지곤 했다
이런 이야기를 늘어 놓으면 희안한 사람이거나 혹시 텔레비젼프로그램 제목처럼
화성인 취급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람의 일이라고는 여기기 힘들고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하기엔 부족하고 어렸을 때 동네어르신 이야기를 빌리자면 산신령 곧 호랑이가
저지른 일이라고 했다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것은 주인공을 현재 알고 있거나
지금으로부터 겨우 30여년전의 일이니간 자신있게 적어본다
30년후는 이야기가 없나고 물으면 그곳서 이사를 나왔기 때문에 더 이상은 고향마을에 대해서
자잘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거의 없어서 잘 모른다
시골 어르신이 낮잠을 주무시다 잠에서 백발노인이 돼지를 짊어지고 가려는 순간에
깜짝놀라서 깨어보니 우리에서 끙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호랑이가 돼지를 등에 짊어졌는데 왼쪽으로 미끄러져서 그냥 두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호랑이는 산신령이라 짊어졌을때 왼편으로 떨어지면 마음에 안 든다고
버리고 간다고 했었다

현재  친정은 서울이고 시집을 수도권으로 가서 살고 있는 나보다 몇살위인 누나는
호랑이하고 2틀저녁을 지내고 가족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던 사람이다
누나의 부모말을 빌리자면
마을 뒷편 산자락 끝부분에 밀밭이 있었는데
누나는 동생 젖 먹인다고 엄마가 일하는 밀밭으로 왔었는데
젖을 먹인후에 동생을 데리고 엄마옆에 있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딸을 옆에 두고 일하려니 신경이 쓰여서
한대 때려서 내려보내려는데 안 간다고 눈방울이 뻘겋게 변했지만 억지로 마을로 내려
보냈는데 저녁에 집에 와서 보니 누나가 안 보여 혹시 옆집에 놀러갔나 싶어
이집저집 다 뒤져도 없어서 동네분들이 호롱불을 들고 앞산이고 뒷산이고 수색을 해도
보이지 않고 엄마는 환장하기 직전이라 산이 울리도록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고
밤도 깊어 집으로 돌아와 밤을 지새우고 다음날도 찿아 다녔는데 못 찿고
답답해서 마지막으로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점을 보러가니
3일째 되는 날에 소식이 들려올 것인데 이 동네 사람이 아니고 다른동네 사람이 소식을
전해 줄 것이며 만약에 3일째 되는 날에 소식이 닿지 않으면 찿기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었단다
그런데 3일째 되던 날 12경이 되니 3키로 정도 떨어져 사는 사람이 소식을 전해주는데
부부가 산에 오르다 이 동네서 사람이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떠 올라서
우연히 밀밭을 보면서 걸어가는데 개가 밀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밀대가 살살 흔들리는 것처럼
흔들리며 점점 이동하길래 한두룩 한두룩 조심스레 보니 잃어버린 아이가 그 곳에 마치
야생동물이 겁에 질려서 사람을 경계하듯이 밀 사이로 몸을 숨기고 얼굴만 돌리면서
바라보는데 얼마나 무서웠던지 말도 못하고 또 어디로 없어질가봐
아내는 계속지켜보고 남편은 한 걸음에 달려서 누나네 집으로 오니 친척들이 모여 있고
할아버지도 계셨는데 할아버지는 잃어버린 손주를 찿았다고 노인네 힘에도 힘든줄 모르고
달려와 누나의 이름을 산이 울리도록 부르면서 업고 내려왔다고 했다
옛말에 호식에 가는 것도 팔자에 있어야 간다는 말이 있듯이 팔자에 없었는지 부모님이
사시면서 음덕을 쌓은지는 몰라도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경우였다
시골은 건축양식이 사랑채가 있던지 행랑채가 있는 것이 기본형식이었는데 누나네 집도
그런 형태였다
누나를 데리고 오고 나서 며칠만인가 한밤중에 행랑채 지붕을 보니 호랑이가 내려다 보고
있어서 더 이상은 그 집서 살수 없다고 아랫마을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데
바로 우리 옆집이었다
물론 누나가 살던 동네에서는 호랑이 먹이를 뺏어왔다는 소문이 돌았고
먹이를 뺏긴 호랑이는 꼭 앙갚음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해만 떨어지면 외출을 하지 않았고
집집마다 요강을 놓고 살았다고 했다
옆집에 살면서 얼마나 우리하고 친해졌는지 어느날부터인가 넘어진 울타리를 다시 하지 않고
헐어버리고 그냥 살았던 기억이 있다
누나의 엄마는 잃어버렸던 딸의 이야기를 꺼내서 말씀을 하실때면 수십년이 지난 이야기를
하면서도 마치 어제 일어났었던 일처럼 실감나게 하시는데
혹시 누나에게 산에서 3일동안 누구하고 있었나고 물어보았나고 질문을 던지니
밀밭에서 내려오는데 하얀할머니가 우리집에 가서 놀다가 가자고 해서 할머니 따라서 갔는데
기와집이었고 밤에도 할머니품이 따뜻해서 춥지 않았다고 했었고
그럼 엄마가 그렇게 목이 터져라 부르는데 들리지 않았었니 하고 물어보니
잘 들리는데 할머니가 대답을 하지 말라고 해서 그냥 있었고
3일째 되는 날에는 할머니가 나가 놀으라고 해서 놀러나와서 있는데 
할아버지와 동네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어 라고 했었단다

집에서 머지 않은 집에 땡중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신경이 쓰이는 스님이 살고 있었다
아내도 있고 딸도 한명 있고 했었는데
아침에는 반듯하게 승복을 입고 길을 나서는데 집에 돌아올때는 술에 취해서
논두렁에 굴러 누워있으면 아내가 데리고 오는 것을 한두번보는 것이 아니었다
어린내가 보기에도 문제가 있는 스님이었는데
불교는 부처님도 모시지만 산신각이라 해서 산신령을 모시는 공간도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 산신령은 곧 호랑이를 뜻할 정도로 산사람에게는 존중과 두려움의 동물이다
동네에서는 희안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 것은
몇개월이 지난 후부터였는데 믿지 않을 정도로 겁나는 소문이 나돌았다
스님이 술에 취해 부처님과 산신령께 정성이 부족한 탓에 산신령이 노해서
자정이 되면 호랑이가 지붕서 꼬리로 법당문을 두드린다는 소문이었는데 조금 떨어지기는
했지만 저녁시간이면 밖에 나가기가 두려웠었다

내가 살던 마을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생긴 기억이 하나 있다
약간은 부족한 아주머니였는데 몸도 통통하고 걸음걸이는 보통사람의 3분의 1속도가 나온다고
하면 어느정도 맞을 정도로 둔한 편이었던걸로 기억된다
남편은 머리가 워낙 좋아서 약간 부족한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어르신을 통해서 알았는데
어느 날인가 하교길에 동네형들이 정말인가 알아본다고 교과서에 나오는 역사이야기를 하니
모르는게 없을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행동만 그렇지 똑똑한 사람이라고 말을 하며 더 이상은 어르신들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어느날 호랑이가 업어다가 덤불에 버리고 간 것을 찿아왔다는 소문이 일었다
일의 진상은 이러했다
새벽5시가 되기 조금전에 아내가 안 보이길래
화장실갔나보다 하고 있었는데 한참을 있어도 들어오지 않길래
나가보니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았는데 새벽시간이라 남의 집에 가 볼수도 없어서
걱정만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려서 받아보니 화악리라며 안 사람이 덤불에 걸려서 울고 있는
것을 부대근무자가 발견해서 보호중에 있으니 데리고 가라고 했단다
모자란 아주머니라 어디 사는지도 모른다고 해서 부대관계자들이 답답했는데
주머니를 살펴보니 불행중 다행으로 전기료영수증이 있어서 연락처를 알아냈다고 하는데
전화를 받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짧은 시간에 걸음도 느린 사람이 40여리를 1시간도 안 되는
동안에 갈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졌다고 했고
혹시나 지나가는 차를 얻어탄 것은 아닐가도 생각해보았지만 그럴리가 없을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돌이켜보아도 그 당시엔 지금처럼 자동차가 흔한 시대는 아니였다
더구나 하루에 버스3대지나가는 시골이고 새벽시간인걸 감안하면 상상이 안 된다
나중에 아주머니에게 물어본 사람이야기로는 할아버지가 데리고 왔다고만 하더란다

또 한번은
형과 형 친구들은 벚을 따러 간다고 하는데 나는 어리다고 자기네들끼리만 갔다
마을서 보일락말락하는 골자기로 꽃넘이고개로 불리는 입구이다
벚나무를 발견하고 주전자에 한알씩 담는데
뭔가가 지켜보는 것같은 느낌이 오고 영 기분이 아니어서 잔뜩 긴장하며 주위를 살피는데
특별하게 보이는 것은 없어도 자꾸 신경이 곤두서고 긴장감이 감도나 싶은 순간에
갑자기 돌더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서 뒤도 안 돌아보고 다덜 도망나오나고
주전자를 버리고 왔다고 했다
벚을 따러 갔었다는 골자기는 산허리를 한굽이만 돌아가면 뭔짖을 해도 모를 정도로
음산하고 바위들이 유난히 많아서 대낮에 멀리서 바라보아도 으슥한 기분이 도는 그런 곳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집은 좀더 들어가서 자리잡은 윗동네서 살았었는데
부모님의 말을 빌리자면 산전밭을 삯을 주며 일구어서 농사를 지었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신다
기억으로는 명칭이 승지골이라는 곳이었다고 하는데
시계도 흔치 않던 시절이라 날이 밝으면 일과가 시작되고 해가 지면 일과를 마치곤 했다고 한다
밭일을 하던 그날따라 날도 흐리고 안개비가 내려서 점심시간이 언제인지도 모르겠고
한두룩만 더 매고 점심을 먹을 것이라 생각하고 밭일을 하는데 안개비에
산속 또랑물이 얼마나 늘었는지 팥자갈구르는 소리가 달가락 달가락 들려서
몸도 으시시하고 밥은 집에 가서 먹어야지 하고
밥가방이 있는 또랑으로 오니 아침에 보았던 그대로 물도 불어난 것도 없고
자갈이 뒤집어진 흔적도 없고 밭에서 들리던 꼴꾼이 지나갔으면 풀에 맺힌 안개비흔적이
발길에 차여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사람이 지나간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찿을수가 없어서
조금겁도 나고 했지만 산에서는 무섭다고 하면 더 무서워진다는 이야기도 들은지라
속으로는 심장이 들썩들썩거렸지만 태연한척하며 도시락가방을 들고 작은 언덕을 넘어오니
그 곳에 사는 주인장이 이 시간까지 늦도록 일을 했나고 놀라면서
우리는 저녁먹은지가 오래 되었다고 하며
시장하실테니 속이나 달래라고 하며 옥수수가루를 칡잎에 싸서 찐것을 하나 건네주며
먹으라고 하는데 편히 앉아서 먹다가는 이 산을 살아서 내려갈지 겁이 나기 시작해서
가면서 먹는다고 허리춤에 넣어 가지고 내려오는데 그 집 지붕이 산등성이에 가려질것처럼
사라질 무렵에 옆골자기에서 돌무더기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얼마나 무섭던지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 내려오다 보니 내린비는 얼마되지 않지만 부지런한 농부한분이
논물을 살핀다고 나와서 있는데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마음이 놓였다고 하신다
집에 와서 허리춤을 보니 옥수수개떡은 어디로 가고 칡잎만 대롱대롱 걸려 있었다고 이야기를
하실때면 웃으신다
나중에 옥수수개떡을 주었던 집에 밭일을 가면서 들르니
자기네가 우리가 농사짖는 밭에서 조금비켜서 집을 짓고 살았는데
땅거미 질 무렵이면 산신령님이 저쪽등성이서 이쪽등성이로 넘어오곤 하는데 마치
집에서 키우는 소를 보는 것처럼 편안하지 무섭지는 않았었다고 했단다
그럼 부모님은 호랑이를 목격하지 못했다는 말인가 정확히 호랑이라고 단정지을수는 없지만
딱한번 보았는데 색은 누렇고 큰개 보다는 크고 송아지보다는 작은듯하게 보이는데
100m정도 떨어진 등성이로 넘어가는 것을 본적이 있지만
무서움을 주지 않아서 그런지 전혀 무섭지 않았다고 한다
노루나 다른동물을 보고 호랑이를 보았다고 하는건 아니겠나고 질문을 던지겠지만 시골사람이
호랑이와 노루를 착각했을 거라고는 생각치 않는다

언듯보면 내가 살던 마을은 골이 깊어보이지는 않지만
수덕산을 등뒤에 업고 있어서 그런지 이상한 일들이 많이도 일어났다
작은 면소재지에서 우리집쪽으로 오다보면 산 언저리에 자리잡고 살아가는 가구가 있었는데
집주변에는 은행나무가 서 있고
뒷산에는 작은 잣나무들이 병풍처럼 옹기종기 모여서 스치듯이 보면 산속에 있는 집이
얼굴만 내민것처럼 느껴지는 풍경이었던 걸로 기억이 떠오른다
집앞으로는 신작로가 있고
대부분시골이 그렇듯이 신작로를 따라 논에 물을 집어넣기 위해서 만들어진 농수로가 흐르고
농수로 건너는 논으로 채워진 뜰이 펼쳐저 있어 정월 대보름이면 쥐불놀이를 하고
놀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으니 동네한복판이라고 해도 표현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알수없는 일이 발생한 것은 들녘이 노랗게 물들어 벼를 베어 논에 눕혀 놓고 말리는
시기였으니 가을이 제법무르익은 계절이었다고 생각된다
막 어둠이 깔리고 저녁을 먹고 있으려니
이사무소(마을회관)에서 요란하게 방송을 한다
혼스피커는 우리집 뒷산에 있었으므로 귀가 아플정도로 쩌렁쩌렁하게 들려오는데
내용인즉은 아랫마을에서 어린아이가 없어졌으니 집주변이랑 인기척이 드문곳을 살펴보기
바란다는 협조를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그 방송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내가 아는 누나도 그랬듯이 며칠지나면
어디선가 찿을수 있겠지라며 내심기대를 했지만 하루이틀 지나도 찿았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잘 맞추는 점쟁이에게 점을 해보니
작은 골짜기가 있는데 그 곳에 들어서면 졸졸졸 물이 흐르는 곳이 있을 거고
오후 3시정도 되면 할아버지가 아이를 데리고 올 것이니
할아버지를 만나거든 절대로 말을 건네지 말고 아이를 두고 갈때까지
지켜만 보고 있다가 데리고 오라고 했단다
만약에 그 시간에 만나지 못하면 못찿는건 아닌데 찿아도 소용없게 될 것이고
소식은 멀리서 온 사람이 전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동네분들은 우리집옆으로 들어가면 막골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초입에 들어서면 산이
양쪽으로 막혀 있고 작은 실개천이 연중마르지 않고 흐르는 것을 생각하고
거기서 기다렸는데 할아버지는 커녕 지나가는 사람만나지 못했다고 점쟁이가 맞추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잊고 지내고 있었다
동네분들에게 있어서 사라진 아이이야기는 화제거리였고
아이가 사라질 당시에 부모는 논에서 벼를 뒤집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더구나 사방이 펑뚫린
공간에서 없어진 것을 생각하면 산신령이 가져갔다고 수근거리며
해만 떨어지면 더 이상 외출을 하지 않고 삭막한 마을이 되어서 하루이틀 지나다 보니
초겨울인가 이듬해 봄인가 되어 아이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춘천서 약초를 캐러와서 이 마을 산에 올랐는데 아이가 갈대밭 사이에 사체로 눕혀져 있는
모습을 보고 아이가 사망했다면 애총이라도 만들텐데 노천에 방치되어 있는 것이 이상해서
마을에 알려주려고 동네분들에게 말을 꺼낸다고 했단다
소식을 전해 듣고 마을분 몇이 그 곳에 가보니
신발한쪽은 물이 쫄쫄흐르는 질퍽한 곳에 벗어져 있고
사체는 하늘에서 살며서 내려 놓았다고 할 정도로 갈대하나 부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사뿐히
놓여 있는 모습을 보고 사람의 짖이 아니라고 더욱 더 두려했다고 했었단다
아이가 발견된 지점은 아이의 집으로 부터 직경거리로 불과 100m내외정도였고
산 입구에는 양 옆으로 산이 늘어져 있고 또한 물도 쫄쫄쫄 마르지 않을 정도로 소량이지만
꾸준히 흐르고 있었으므로 점쟁이는 맞는 말을 했는데 무지한 인생이 정확한 자리를 짚지
못한 탓에 살릴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면 아이의 부모는 얼마나 속을
태웠을까?
1년에 한번 고향에 벌초를 가서 그 집앞길을 지나갈 때면 문득 국민학교때 일어났던 한 아이가
사라졌던 기억이 엊그제일처럼 머리속에 그려진다

아이가 사라졌던 일이 있고 나서도 숱한 이야기들은 어린 나를 무섭게 만들었다
작은 면소재지에서 우리마을로 들어오려면 다리를 건너고 제일먼저 만나는 것은
산이 흐르다 잘린 듯이 뭉특하게 솟아있는 자리인데 올려다 보면 바위가 보이는 모습이다
잘은 기억이 안 나는데
동네 어르신이 제삿상에 쓰려고
돼지고기를 한근인가 끈어서 저녁에 걸어오는데
할아버지인지 할머니인지 정확한 형체는 파악이 안 되었지만
나도 고기먹고 싶어  나도 고기먹고 싶어 하며 따라오길래
놀래가지고 집어 던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왔고 두번다시는 한밤중이면
그 곳을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가 사라졌던 집 하고는 150m정도에 위치한 장소이고 외관상으로 사과나무도 있고
신작로 바로 옆이라 외딴곳도 아닌데도 알수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논리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조금 힘들거 같은 장소였던거 같다

동네한가운데로 이사오기 전에는 달랑 두집만 있는 산골에 살았던 적이 있다
국민학교에 입학하기전이었는데 내가 어렸을때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었다고 하면
학교 들어가기 전 일인데 기억이 나나고 어른들은 신기해하셨었다
다른사람이 화전(산에 불을 놓아 만든 밭)을 일구어 농사을 짖던 땅이었는데 농사를
지어보겠나는 산주인의 제의에 혼쾌히 응해 그리로 가게 되었다는데
언제부터인가 동네분들이 산 속에서 사는데 애로사항이 없나고 약간은 걱정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가끔씩 말을 건네길래 그냥 편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하니
우리가족이 무서워할가봐 말은 못했는데 지난해에 나물하러 그리고 갔었는데 집 뒤에 보면
넓적한 바위하나 보이지 거기에 호랑이가 있는거 보고 놀래서 혼자서는 절대로 그 산에 오르지
않는다고 말을 하는데 부모님은 한번도 목격된 적이 없고 무서움을 주지 않는지 매우
편하다고 말씀을 하셨고 7년정도를 살았지만 목격은 못했다고 한다
몇년이 흐르고 화전도 오래 묵으면 산전이 된다고 눈 감고도 몇발자욱을 가면 바위가 있고
나무그루터기가 있다는 것을 알 정도에 이르렀을때 부지런한 아버님은
어느정도 마른 콩을 지게질로 한 곳에 모으기 위해 일찍 일을 시작하셨는데
한짐을 지고 와서는 담배만 만지작거리며 봉당에서 부시럭거리고만 있길래 잠결 밝은
어머님이 상황이 이상해서 몇시인데 벌써 지게질을 하나고 조금 더 있다가 하라고 말을 건네니
일찍 끝내야지 하며 광솔(소나무그루터기가 썩을때 제일나중까지 남아 있는 뿌리)불을 지피라고
하시기에 왜 그런가 의아해 하며 불을 밭가운데 해 놓고 콩을 나르는 동안에 거기 남아있으려니
한사코 따라서 올 것을 원하기에 동이 틀때까지 산전밭을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고
아침을 드시면서 사실은 새벽에 콩을 지러 밭에 나갔는데 밭 한쪽바위에 그 넘이 눈에 불을 밝히고
앉아 있는데 무섭다고 도망오면 해칠까봐 콩을 조금만지고 못본척하고 조용히 올라오는데
발걸음이 안 떨어져서 혼났다고 하면서 평소보다 아버님 눈이 두배로 커져 보이더란다

생생하게 기억은 못하지만 새벽시간에 단잠을 깨웠던 일은 어렴품이 머리속에 남아 있다
한번은 이른 아침시간인데도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가 시끄러워 잠에서
깨어났는데 방문이 열리더니 뭔가 부시럭하면서 방바닥에 나 뒹근다
처음보는 물건인지라 얼른 달려들어 집어들지를  않고 있었는데 처음보는 아저씨가
물건을 집어 들더니 반으로 쪼개며 먹는 시늉을 하면서 내게 건네신다
한입먹어본 느낌은 생전처음느끼는 맛이고 약간은 달콤한 기운이 미각을 타고 온 몸으로
스며든다
아저씨는 부엌으로 들어가 부모님하고 뭔가를 이야기하더니
어디론가 가버렸다
한참후에는 처음 보았던 물건을 한 바구니 가득 내려 놓으며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너무나 어려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내가 이야기를 알아들을 무렵에 그 때 이야기를 꺼내니
거기서 더 올라가면 국민학교가 있는데 그 아저씨는 그 학교로 정부에서 나누어 주는
빵을 배달하러 가는 중이었고 공교롭게도 집아래서 차가 고장을 일으켜 밤새워 추위에 떨면서
지냈는데 새벽시간에 희미하게 길이 보이길래 혹시나 싶어 올라와보니 집이 보였고
다행히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반가워서 실례를 무릅쓰고 왔다고 하면서
아침을 해주면 밥값은 준다고 하는데 보시다시피 산골이라서 반찬도 부실하고 돈 받고
해줄 정도의 밥상은 차릴수 없다고 하니
그냥 맹물이라도 좋으니 따스한 국물에 찬밥이라도 한끼 먹을수 있으면 된다고 해서
평소 먹는대로 씨락국에 옥수수쌀로 밥을 해 주었는데 세상에서 제일 맛있게 먹은 밥이라고
하면서 빵을 들지 못할 정도로 수북하게 가져다 주었던 것이라고 했고
우리형제는 밀가루 빵이 맛있다고 열심히 먹어댄 덕분에 변비가 생겨서
참기름을 한 숟가락씩 먹여서 정상으로 돌려 놓았었다고 말을 이어 가신다

다른 일화는
노름꾼아저씨가 혼쭐난 이야기이다
그날도 네 돈도 내돈이고 내 돈도 내 돈이라는 생각으로 자정이 넘어서까지
열심히 도박을 하고 나서 평소처럼 집으로 오는데 바위가 산 정상쪽으로 늘어져 있는 곳을
지나오려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따라오면서 돌맹이도 던지고
얼음도 깨서 던지는데 돌아보면 금방이라도 덥칠거 같아서 돌아보지도 못하고
까불지 말라고 까불면 죽인다고 소리만 크게 지르면서 아저씨네 집 보다도 우리집이
가까우니간 우리집으로 올라오려는데 길을 제대로 못 찿아서 가시나무사이로 오는데
우리집 지붕이 보이길래 이제는 살았구나 하면서도 뒤에 있는 녀석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소리소리지르며 올라왔다고 방문앞에서 아버지를 부르는데 밤 사람은
세번부르지 않으면 대답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전해 오기 때문에 아버지는 세번을 다 듣고
나서 문을 열고 보니 그 아저씨가 밀치듯이 방으로 들어오면서 엉엉 울면서 너무도 무섭고
서러워서 통곡을 했었단다
사람이 세번부르기 전에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은 귀신은 단 한번만 사람을 부르지 여러번은
부르지 못한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침이 훤하게 밝아오고 있어도 그 아저씨는 집에 가기가 두려워서 가지를 못하고 있어서
광솔불을 붙여 가지고 집에까지 모셔다 주었다고 한다
대부분 동물이 불을 무서워 하듯이 호랑이도 불을 무서워한단다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털이 탈까봐 그런다는데 불이기 때문에 피하는 것 같다
그렇게 혼쭐난 아저씨는 짧은 잠간동안이나마 철이 들은 것처럼 한밤중에 노름은 자제하고
귀가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좋은 버릇 개 주나고 처음상태로 돌아갔고 1년인가 그 곳에서 살다가
펑쟁이 답게 서울로 이사를 가고 우리하고는 인연이 끊어졌다 아들이 용대라고 했던거 같은데
어디선가 잘 살겠지^^

여름저녁을 마치고
방문을 열고 냇물이 흘러가는 방향을 바라보면
왼쪽에서 흐르는 산은 바위서들산이고 오른쪽에서 흐르는 산은 연인산줄기 끝자락이고
냇가에서 멈춘산기슭을 따라 상류로 조금올라가면 항아리바위가 있다
정면으로 보이는 산은 대원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가평쪽으로는 산이 부드럽지만 북쪽은
암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어떤날은 바위서들산에서 자전거불빛같은 붉은등불이 내려오곤 했다
밤중에 산에서 사람이 내려온다고 하기엔 정신나간사람 같고 더구나 바위산이라서
사람이 접근하기에는 쉬운산이 아니다
불빛은 신작로까지 내려와 우리집아래를 지나가는지 몰라도 언덕에 가려서 더 이상볼수가
없었는데 우리가족만 알고 있는 호랑이불인지 알았는데 노름꾼아저씨네 가족들도 여러번보았다고
했다
세월이 흘러 산골생활도 정리하고 마을로 내려온후로
형은 새로 사귄 동네친구들에게 바람을 넣어 가지고 우리가 살던 앞 개울에 가면
넓적한 바위도 있고 고기도 많고 놀기 좋다고 철렵을 한답시고 나무로 만든 달구지에
간단한 취사도구를 싣고 가기에 이르렀다
형 일행은 어른들이 밭에서 돌아오기 전에 일찌감치 친구들과 그 곳으로 같고
부모님은 형은 어디 갔는데 안 보이나고 묻기에 철렵한다고 나만 나두고 자기네들끼리
취사도구 가지고 갔다고 하니 어디로 갔나고 하기에 백둔리 입구로 갔다고 하니
무서운 곳인데 뭐하러 거기까지 갔나고 걱정하시면서도 밤이라 대뜸데리러 가지는 않았는데
아침에 얼마나 이른 시간에 출발을 했는지 생각보다 빨리 왔다
그런데 몰골이 영 아니다
얼굴은 새까맣고 밤을 새웠는지 눈만 반짝거리는 모습이 지금으로 말하면
군대서 야간매복마치고 방금 내무반에 돌아오는 것하고 비슷한 모양새다
본새를 보니 야영이 꿈처럼 달콤했던 것은 아니고 뭔가 사연이 있어 보인다
그물도 가져갔던 기억이 생각나서 고기는 많이 잡았나고 물어보니
고기가 문제가 아니란다
비닐로 텐트랍시고 다리발밑에다 그럴싸하게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밥도 해 먹으면서
밤이 깊어지기 전까지는 환상적이었는데
누가 다리위에서 모래를 뿌리고 자갈도 집어 던지고 그러는 바람에 잠도 하나도
못자고 친구들하고 함께 나가서 땔감구해다가 불을 잃지 않고 버티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나무구하나고 밤을 지새웠단다
고기는 못 잡은거나고 하니 수달이 지나갔는지 그물에 고기는  안 보이고
여기저기 구멍만 펑펑 뚫어져 있어서 버렸다고 한다
약간은 짖궂은 기가 있었는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며칠있다가 또 갈거나고 확인사살을 하니
다시는 안 갈거라고 했다
얼마나 혼났는지 세월이 흘러도 야영가자는 이야기는 듣지 못한 것 같다

마을 한복판에 자리잡은 집 옆으로 가면 큰골 달골로 이어지는 골자기가 나온다
그 곳은 한 겨울에 나뭇꾼이 나무를 하러 갈때나 혹은
봄에 산나물을 얻기 위해 나물꾼이 방문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적이 닿을 일이
거의 없는 곳이다
큰골에 밭을 마련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마을 어르신이 무서운 곳이니 너무 늦게 까지 일하지 말고 어둡기 전에 내려가라고 했었던
기억도 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어르신이 건너편 산에서 송아지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고 했는데
그 곳은 민가도 멀고 거기까지 송아지가 올리가 없는 곳이었다
송아지는 어미소가 있어야 길을 나서지 홀로 행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겁도 많은 동물이고 어미소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습성을 지닌 동물이다
그런데 어둑할때에 건너편 산에서 송아지가 다니는 것을 보았다고 한것은
호랑이를 보았다고 하면 무서워할까봐 무서움을 주지 않으려는 어르신의 배려였었다
좀더 깊숙히 들어가면 달골로 이어지는데 더 가면 소법리라는 동네가 나온다고 들었다
한번은 마을분들이 그 먼곳까지 나물을 하러 갔는데 달골고개넘으면 약간 음산하고
작은 공터가 하나 있는데 그 곳에 국민학교 운동회 때 입었던 보라색 반바지를 찢어서 높은 나무에
걸어놓은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 일행중에 어머니도 있었으니 새빨간 거짖말은 아니다
그 무렵에 산넘어 어느 동네인지는 몰라도 사람하나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나 돌았으나
남의 동네이야기였으니 결과가 어떻게 돌아갔는지는 모르고 지나갔다
달골 고개를 넘기전에 왼편등성이를 따라 걸어올라가면 작은 골자기가 나오는데
그 곳은 멀리 일가가 되는 분의 집안 묘지가 있는데 그 곳은 나물을 하러가서 보면
레슬링이라도 했는지 깊은 발자욱이 움푹나있고 노린네가 매움하게 난다고 했었다
서울사시는 이모님하고 어머니하고 나물을 하러 갔을 때인데 이모님이 그 곳에 발을 들이다가
냄새를 맡고 여기는 나물이 없어 다른 곳으로 가지 하고 어머니와 함께 골자기를 벗어났다고
집에 와서야 사실직고 하시면서 그 골자기에서 냄새나는 것을 보니 거기서 놀다가 사람인기척을
느끼고 피해서 우리일행을 지켜보고 있었던거 같다고 하셨다
그 곳서 조금올라가면 협곡처럼 기분나쁜장소가 있는데 왼편으로는 바위서들로 절벽을 이루고
있어서 바위앞에 서는 것만 해도 주눅이 들 정도로 섬득함을 선사하는 자리가 있다
다른 나물꾼은 흐린날 그 곳에 왔다가 기분이 이상해서 올려다 보니 붉으스레한 털을 지니고
있고 송아지보다 조금 작은 듯한 녀석이 지긋이 내려다 보고 있어서 나물이고 뭐고 그만하고
내려온 기억도 있다고 했다
거기서 곧장 내려오면 막골이라는 곳으로 이어지는데 몇가구되지도 않고 전형적인 산골마을
형태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요즘은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 많아서 여름철이면 등산객이 많이 지나간다고 하는데
그 산이 얼마나 무서운산인지 알고나 수덕산에 오르는지 궁금하다
아래로 내려오면 지금까지 여정을 포물선이라도 그리듯이 큰골입구에 이른다
큰골서 흐르는 물과 막골서 흐르는 작은 물줄기가 만나 삼각을 이루는 곳인데
막골쪽길로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작은 밭이 보이고 밭위쪽에는 묘지가 있고 묘지 옆에는
아름드리 잣나무가 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도 그 곳에 잣나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밭초입에 오른편으로 보면 약 1평 정도에 이르는 넓적한 바위가 누워있는 것이 보인다
그 바위에도 사연하나가 숨어 있다
막골사는 주민중에 집배원하던 분이 있었는데
지금은 오토바이 배달이 중심이지만 그 당시에는 자전거 배달이 많았었다
어쩌면 술을 좋아하는 탓에 오토바이를 구입하지 않았는지 개인사정은 접어두고
술만 취하면 자전거는 아랫마을에 던져두고 몸만 한밤중에 올라가는 일이 다반사라서
저렇게 술을 마셔도 편지를 제대로 배달하는데 지장이 없나 하는 걱정아닌 걱정이 동네어른들이
그에 대한 평판이었다
어느 날은 아랫마을서 한잔 걸치고 밭이 보일듯한 장소까지 왔는데
시퍼렇고 붉으스레한 불이 바위에 앉아 있어서 호랑이는 불을 무서워한다는 소리도 알고
술도 한잔 했겠다 평소에 담도 좋겠다 해서 성냥에 불을 붙여도 꼼짝도 안하고 있어서
스스로 놀래가지고 다시 술을 마신 집으로 와서 잠을 자고 아침에 날 밝은 후로 올라갔다고
온 동네에 소문이 났었고 한동안은 집배원아저씨가 아랫마을서 취해서 자전거와 함께
넘어지는 모습을 구경조차 하기 힘든적이 있었었다
그 마을에 살던 기억으로는 막골입구에 들어서서 주위를 돌아보면 우측으로도 산줄기가
흐르다가 멈추는 곳이 그곳이고 왼편으로도 흐르다가 멈추는 곳인데 끝자락에 바위가
튀어나와 있어 금방이라도 수덕산에서 호랑이가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와 내 앞에 나타날거 같아서
무서워지고 움추러지는 장소이다


현시대에는 누에는 동충하초나 약리용 또는 건강식품을 얻기 위해 기르는 정도지만
고향을 떠나기 전에는 양잠업이 돈을 벌어들이는데 한몫했던 시기이기도 했었다
일명명주실이라는 것이 누에에서 생산되는 실인데 천연소재이기에 천을 만들면 매우 감촉이
좋은 옷감이 되었다
그러다가 화학섬유로 비슷한 정도의 감촉과 가격경쟁력에서도 우수한 섬유사가 시장을
휩쓸었고 엎친데 겹친다는 말처럼 중국서 양잠업에 진출하면서 누에는 사양산업으로 불리었다
고향마을서도 봄가을에 양잠업을 하는 분들이 한집건너 한집이라고 할 정도로 해마다
봄과 가을에 마을회관에서는 작은 나무상자에 망사로 덮어놓은 누에알을 주문한 농가에 배분하는
풍경으로 봄이 시작되고 가을이 지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누에는 가공된 사료를 먹는 벌레가 아니고 뽕나무 잎을 먹고 자라는 애벌레인데 탈피를 네번인가
하게 되면 어른 손가락만큼이나 커다랗고 하얗고 통통해진다
그 상태로 며칠동안인가 먹이를 먹어대면 더 이상 먹지 않고 하늘을 향해 기도하듯이 꼼짝도
하지 않고 먼산만 바라보는 자세로 있는데 누에를 형광등에 비추어 보면 몸속이 투명하게 보인다
그러면 누에집이라는 종이상자로 바둑판처럼 만들어 놓은 것이 있는데 거기다 붙여 놓으면
틈새로 들어가 하얀 집을 짖고 번데기로 변해가는데 며칠이 지난후에 손으로 흔들어 보면
달가락거리면서 안에서 번데기 구르는 소리가 들리면 누에집으로부터 분리하여 엉성하게 있는
실을 뜯어내고 실뽑는 업자에게 팔면 누에고추를 푹 삶아서 기계로 실을 풀어내면 천연소재의
명주실을 만드는 최소단위의 소재를 얻는다
실을 다 풀어내고 나면 번데기만 남는데 시장서 파는 뻔 뻔 외치는 품목이 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4번째 탈피를 하고 나면 뱃속에 실을 만들어 저장하기 위해서 겁나게 먹어 대는데
일손이 모자랄 정도고 밭에 가꾸던 뽕나무 잎이 모자라면 야생뽕나무를 찿아서 산으로 들어가
뽕잎을 따는데 혼자는 안가고 동네분들하고 모여서 가는 것이 보통이다
마을서 떨어진 곳에 먹골이라는 마을이 있었고
그 곳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지만 내가 고향서 살고 있을 때 생긴일이었으니 지어낸 이야기로
치부하면 서글퍼진다

그 해도 뽕잎이 부족해서 산뽕을 훓으러 갔는데
3명이서 주변에 흩어져 뽕을 따고 있었고 주인공 아주머니는 한 보따리를 따서
집에 갈때 가지고 가기 편하게 바위위에 올려 놓고 작업을 계속하는데 옆 골짜기에서
뽕따는 소리가 투투둑 거리고 쪽 훑는 소리가 들리길래 일행중에 누군가가 저쪽으로 가서
따고 있구나 하고 편하게 있었는데 한참후에 일행과 합류하여 집에 오려고 뽕보따리를 찿으니
분명히 놓아두었던 바위에서는 모습을 찿을수가 없어서 굴러내려갔나 하는 생각에 주변을
살펴도 풀하나 쓰러지지 않은 상태라서 이상하다 생각을 하면서
집에 와보니 이미 보따리는 마루에 턱하니 놓여 있어서 남편보고 혹시 가져왔나고 물으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누에키우다 사람잃어버리겠다고 키우던 누에를 두엄자리에
쏟아 부어서 며칠이고 누에가 허옇게 돌아다녀서 보기 싫다고 두엄으로 덮었는데도 생명력이
얼마나 강한지 뚫고 나오더라는 것이었다
산에 갔을때 고양이새끼같은 것이 있으면 가져오지 말고 만지지도 말고
보기만 하면서 이쁘다고 하면 호랑이가 지켜보고 있다가 자기새끼 이쁘다고 했다고 좋아서
어흥하면 놀라서 나물보따리를 두고 집으로 줄행랑치면 이미 나물보따리는 집에 와 있었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뭐가 이뻐주둥이를 확 찢어버릴가보다 하면 알아듣고
나중에 해꼬지 당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시골서 사는 동안에 우리집이라고 아무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달이 휘엉청 밝은 밤에 툇마루밑에서 성질더럽고 용맹하던 개가 깨갱거리면서
막골골자기 쪽으로 달려 갔고 뒤이어 마루밑에서는 검은 그림자의 정체모를 동물이 뒷산으로
한걸음에 달려 올라간 적이 있었다
개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는데 10일정도 지난 어느날 막골로 올라가는 입구에 보면
바위가 솟아있는 아래 또랑에서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는데 몸에 특별한 상처는 없었고 물에 몸이 살작담구어진 그대로 얼어서 있었다
마을어른들은 왠 횡재나 싶은지 묻어주지 않고 입으로 해결을 했다

이것은 좀 오래된 얘기지만
어머니가 전라도 함평인가 영광인가에서 자라던 시절 이야기다
집 뒷산은 제비산이라고 불리던 곳이라 했는데 외할아버지가 그 곳에 잠들어 있기에
수년전에 한번 갔었는데 야산이라서 호랑이가 없을 거 같았는데 어렸을 때 보았다고 하셨다
집을 지을 운이 없었는데 외할아버지는 건축을 강행하셨고 이사를 들어간 다음해에 벌어진
일이다
외할머니는 애덜이 집에서 자는 모습을 보고 울타리 하나 사이인 밭에서 일을 하시다가
점심시간이 되어서 들어와 보니 애덜은 간데 없고 방문은 어느 짐승인지가 물어 뜯어서
흐트러져 있는 광경에 새파랗게 질려서 머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큰 집으로 단숨에
달려가니 애덜이 거기서 놀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큰집식구들보고 우리집이 난장판이 벌어졌다고
하니 다덜 와서 보니 방문은 그렇게 되어 있는데 자세히 보니 타액이 질퍽하게 흐르고
소도 없는 집인데 누런털이 군데군데 묻어 있고 부엌쪽을 보니 방문으로 들어가 소금독을
넘어뜨린 광경이 고스란히 넘어진 상태로 소금은 그대로 들어 있었고
부엌문은 안으로 당겨야 여는 구조라서 밀다가 안 되니간 다시 방으로 해서 나간 모습이라서
여기서는 더 이상 살수 없다고 이사를 했는데
어느 봄날에 어린 어머니하고 동네꼬마들 하고 소꿉놀이를 하던 중에
옆에서 놀던 친구가 숨이 넘어 갈듯이 울고 있길개 어머니는 돌아보니 군인지프차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차가 온다고 좋아했는데 애덜이 우는 소리에 싸웠나 싶어서 베를 짜시던
외할머니는 방문을 열어 젖히니 어머니는 지프차가 후진으로 앞마당쪽으로 갔다고
하면서 외할머니에게 말을 하니 느낌이 안 좋아서 외할머니는 앞마당쪽으로 나란히 마주한 
문을 열어젖혔는데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각자의 아이에게 물어보니 한명은 큰소가 와서 무서워서 울었다고 하고
다른한명은 커다란 고양이가 왔었다고 했단다
어머니는 호랑이 이야기를 하실때면 제대로 보이지 않고 둔갑해서 보인다고 하신다
그래서 산신령이니 영물이니 하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오는 것 같다
전라도 고창이라는 곳에는
어머니외가 집이 살고 있었는데
그리 깊숙한 산은 아니고 보기 좋을 정도로 나즈막한 산 자락에 기대어 자리한 집이었는데
마당 한 켠에는 오래되어 속이 빈 고목이  있었다고 한다
평소에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장소였는데
어느날은 동네꼬마들이 술래잡기한다고 고목나무주변서 놀다가
나무안을 들여다보니 고양이 새끼들이 옹기종기 있는 것을 보고 할머니에게
고양이가 나무안에 새끼를 낳았다고 하니 주변에 고양이를 키우는 집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할머니는 무슨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나 생각하고 이상해서
고목나무안을 들여다보니 호랑이새끼라서 꼬마들보고 소문을 내지 말라고 하였지만
소문내지 말란다는 이야기까지 더 해서 면직원들도 알아가지고 구경온다고 와보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었다는 것이다
호랑이는 깊은 산이라고 있고 낮은 산이라고 없고 하지 않는 영물의 짐승이라고 한마디 덧 붙인다
야생동물의 습성상 사람에게 발견되었다는 것을 알고 다른 곳으로 옮긴후에 왔었던 것 같다


외할아버지 한양구경갔다가 호랑이 하고 멀리서 동행을 했던 이야기
어머니에게 전해들은 외할아버지는 서당훈장님이 되시기 전에는 한량끼가 조금있었던 분이다
지금이야 차만 타면 어디든 갈수 있고 여건만 되고 마음만 먹으면 지구촌 어디에도 갈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시절만 해도 시골양반은 서울구경하는게 최고의 구경거리고 자랑거리였던거 같다
얼마나 한양구경을 하고 싶었는지 외할아버지는 아버지 몰래 논을 팔아가지고 그날로
한양구경을 떠난다고 길을 나섰다고 한다
함평서 걸어 한양문턱에 왔는데 지금으로 말하면 영등포쯤 되는거 같다
노자가 떨어져서 귀향하는 중이었단다
지칠대로 지친 몸으로 영광까지는 갔는데 아버지가 무서워서 집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인심이 좋은 시절이라 어느 집 행랑체에서 잠시 머무는데 모내기 철이 되어서
모를 심어달라는 말에 그 동안 얻어 먹은거는 갚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그 집 모를 심어주었는데
잘 심는다고 소문이 나서 이집저집 품값받아가며 봄철을 거기서 다 보냈다고 한다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워낙 솜씨가 좋아서 다른 사람보다 세배속도는 될 것이라고 했다
함평을 가려면 높은 고개가 있는데 평소에도 장날이면 산적이 나오고
하는 곳이라 장보러 나와도 여러사람이 모여서 고개를 넘는다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저녁시간에 그 곳에 도착했는데 주막에서 이 밤에 고개를 넘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으니 아무집처마밑에서라도 이슬피하고 낮에 넘으라고 극구 말렸는데도
고집을 부리고 고개를 넘기 시작했는데 중턱정도 오르니 몸에서 찬바람이 휑하니 돌기에
읽은 책도 많고 들어온 이야기도 많은지라
몸에서 찬바람이 돌면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해가 될 것이고
더운 바람이 돌면 동물을 만난다는 것을 알았기에 길을 피해서 있으니간 세사람이 걸어오면서
하는 소리가 며칠전 장날에 소팔고 오는 사람잡아서 횡재했다고 웅성웅성 떠들면서 지나가는데
말로만 듣던 산적을 피하고 나니 다리가 풀려서 잠시 앉은 상태로 담배한대 피우고
다시 길을 가는데 멀리서 불빛이 하나 보이기에 빨리 가면 일행이 되겠구나 해서 빨리 걸어도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몸에서는 더운 바람이 돌기에 아 동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호랑이가 앞서서 걸으면 길안내를 하는 것이고 뒤에서 따라오면 해를 끼칠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들은 이야기는 있어서 별 두려움 없이 고개를 다 넘으니 작은 팥알만한 자갈이 할아버지 옆에
떨어지는데 약간은 겁이 생겼지만 뒤를 돌아보니 호랑이가 첫번째집으로 들어가기에
평소에 들었던 이야기대로
주인장 큰손님 들어가시니 대접잘해서 보내시요 하고 돌아서니
잠시후에 깽 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때 까지만 해도 별 무서움없이 다른집으로 가서 주인장을 찿아도 밤손님이라 대답이 없어서
세번을 찿으니 문이 열리는데 고개를 넘어왔나고 깜짝놀라면서 집안으로 맞아들이는데
거기서 부터는 무서워서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았었다고 하시며
아침에 들리는 소리가 옆집개가 없어졌다고 했었단다
세상을 떠나기전까지도 외삼촌이 서울간다고 하면 정신나간놈이라고 나무랐다고 하신다
이런저런 이야기덕분에 나도 두번이나 도움을 받은 기억이 난다
한번은 안개가 자욱한 새벽길을 운전하는데 차문이 열린 것도 아닌상황이었지만 온몸에
차거운 바람이 돌아서 혹시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 속도를 줄였는데 술취한 사람이 중앙선에서
검은색의 옷을 입고 흐느적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 사람을 지나치고 나니 몸에서 찬바람이 사라졌고 전해 들었던 이야기 덕분에 사고를 면할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또 한번은 충청도에 가면 구인사라는 절이 있는데
한동안 마음이 허전하던 시절에 거기서 밤을 지새운 적이 있었는데 새벽4시경에 산에 오르려고
계단을 몇개 올라가니 찬바람이 휑하니 몸안에서 생기기에 올라가지 않았다
여름이었고 아마도 계속올라갔으면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가능성이 높은 순간이었지만
이런저런 전해들은 이야기는 지혜로 내게 다가와 현명하게 대처할수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국호랑이는 살아있다고 믿고 싶어서 믿는 것이 아니었고
정말로 살아있고 멸종되지 않았다고 여기며 지냈다
호랑이연구가이신 임승남씨가 한국호랑이는 멸종되지 않고 야생에 최소한 10마리 이상이
존재한다고 어디선가 말을 한것을 듣고는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에 헛된 믿음이 아니었다고 느낀다
지붕에 놓여진 기왓장을 눈으로 세어보아야 몇줄로 놓인지를 알겠는가
처수마 밑 땅에 파인 물자욱을 세어보고는 알수 없는가?

 

 

 

 

 

 

 

출처 : 금성라디오 삼천포 진주 추억 펜팔 진삼선
글쓴이 : 은초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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