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청룡영화제]를 빛낸 김혜수의 '부비부비'

항샘 2009. 12. 3. 11:12

한국 영화계의 최대 축제인 제 30회 [청룡영화제] 가 무사히 끝났다.


김명민과 하지원이 [내사랑 내곁에] 로 주연상을 독식한 가운데 대체로 납득할 만한 사람들이 상을 받아서 역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제다운 면모를 보여준 듯 하다.


그러나 제 30회 [청룡영화제] 를 빛낸 사람은 따로 있었다.


바로 '청룡의 여인' 김혜수다.





우리나라 영화 시상식은 [대종상][청룡상][대영상][춘사영화제] 등 수많은 시상식이 있지만 여기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모습이 하나 있다. 바로 여배우들의 '마론인형' 같은 모습이다. 그녀들은 언제 어디서든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모나리자 같은 온화한 미소를 띄우며 앉아있다. 행여나 카메라에 얼굴이 비칠 때면 고개를 약간 숙이며 쑥쓰러워 하거나 온화한 미소를 더욱 환하게 짓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박제된 모습은 사회자가 농담을 하든, 가수가 나와서 춤을 추든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 중에서 김혜수만큼은 '항상' 다르다. 그녀는 어디에 있든 빛이 난다. 여유롭고 상황을 즐길 줄 아는 진정한 스타다. 하희라가 평했던 것처럼 그녀는 가만히 있어도 '스타의 향기' 가 난다. 자신감 있고 당당하며 모든 일에 호탕한 웃음을 지어 보일 줄 아는 배우다. 특히 시상식에서 김혜수는 다른 여배우들과 달리 시상식 자체를 즐겁게 받아들인다. 가수가 나오면 환호를 하고, 사회자가 농담을 하면 호탕하게 웃어보일 줄 안다. 그건 자신이 사회를 보는 [청룡영화제] 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청룡영화제] 의 초대가수는 신승훈, 2PM, 박진영이었다. 그 중 박진영은 첫 컴백무대를 [청룡영화제] 에서 가지면서 [대종상] 의 브아걸이 그랬던 것처럼 객석으로 내려가 배우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려 노력했다. 반응은 브아걸 때만큼 나쁘지 않았다. 워낙 박진영이 노련한 가수이다보니 분위기를 잘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박진영의 곁에서 어색한 미소를 띈채 박수만치는 여배우들의 모습은 다소 아쉬웠다. 물론 그 상황에서 그녀들이 할 수 있는거라곤 박수 밖에 없었음을 이해 못하는 바 아니지만 보다 자연스러운 표정과 제스추어만 취해 주더라도 훨씬 시상식이 빛날텐데 하는 안타까움은 두고두고 남았다.


그런데 '사건' 은 여기서 터졌다.


박진영이 객석의 여배우들을 지나 MC석의 김혜수에게 다가가자 김혜수는 기다렸다는 듯 박진영과 어울려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너무 과하지 않게, 하지만 충분히 분위기를 '후끈' 달아오르게 할 정도로 센스 있는 댄스를 선보인 김혜수의 '부비부비' 는 일순간 박진영의 무대 뿐 아니라 [청룡영화제] 자체를 환하게 빛나게 만들었다.


조신하게 앉아 웃음 짓는 후배 여배우들과 달리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을 간직한 채 상황 자체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내는 그녀의 모습은, 그래서 상당히 신선했고 굉장히 놀라웠다. 수많은 예쁜 인형 속에서 아주 괜찮은 사람을 직면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신나면 신나는대로 몸을 흔들고, 웃긴 이야기가 있으면 호탕한 웃음으로 화답하고, 상황이 어색해지면 센스있는 한마디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청룡영화제] 속 김혜수야말로 배우 혹은 스타 이전에 인간적으로 참 매력적이고 아름다웠다. 20여년간 김혜수라는 배우를 지탱해 온 근간이 자신감과 당당함, 그리고 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유로움이었다면 그녀의 이미지야말로 진정 만들어지거나 꾸며진 것이 아닌 김혜수 본연의 인간미인 셈이다.


지금의 김혜수는 이미 대중의 '비평' 을 일정부분 뛰어넘은 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그 근간에는 '스타' 김혜수가 아니라 모든 것을 드러내도 절대 고갈되지 않는 '인간' 김혜수의 매력이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부비부비를 할 수 있다. 누구나 웃긴 이야기에 호탕하게 웃으며 박수와 환호를 보낼 수 있다. 그런데 여배우는 그것을 하지 못한다. 그녀들에게는 대중이 기대하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김혜수도 여배우다. 여배우라면 이미지도 지켜야 하고, 매사에 조심을 하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김혜수는 애써 자신을 포장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듯 하면서 주위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겉치레,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앉아있는 의도적인 예의바름,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어색함 대신 그녀는 '김혜수' 의 솔직하고 당당한 감정과 모습을 선택했다. 자신을 포장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자신을 빛나게 만들 줄 아는 것은 김혜수의 대단한 강점이다.


20대 여배우들의 젊음을 뛰어 넘어 김혜수의 완숙미가 시상식에서 비춰지는 짧은 시간 속에서 빛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사람들의 예상을 깨면서도 그들과 '소통'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김혜수의 '부비부비' 에 열렬한 박수를 보내도 아깝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배우 김혜수. 스타 김혜수. 그리고 인간 김혜수. 이 당당하고 멋드러진 여배우가 10년, 20년 후에도 여전히 '청룡의 여인' 으로 빛날 수 있기를, 포장하거나 가식 떨지 않고 끝까지 자유로운 스타이자 인간으로서 대중 곁에 남을 수 있기를 다시 한 번 바래본다. 오늘 진정한 [청룡] 의 주인공은 김혜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