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스크랩] 당간지주와 괘불석주에 대하여

항샘 2010. 7. 17. 08:38
◈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의 좌우에 세운 기둥을 말한다. 대부분 돌로 되어 있다. 당간은 당을 매달기 위하여 높게 세운 장대인데 대체로 돌이나 철로 조성한다.

당간은 보통 사찰의 입구에 세워져 절 안의 특별한 행사내용을 알리는 깃발을 걸도록 되어 있다.당간은 그 머리모양에 따라서 이름을 달리 부른다. 용머리 모양을 한 것은 용두당이고, 사람의 머리 모양을 한 것은 인두당이라고 한다.

당이란 부처나 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표시하는 깃발의 일종이다. 당간의 정상부에다가 깃발을 걸어 놓는 것이다. 이는 항상 걸어두는 것이 아니라 사찰에서 기도나 법회 등의 의식이 있는 날이거나 불교의 기념일 같은 날에 걸어 둔다.

당간이 삼국시대 불교의 유입과 더불어 조성되었다고 추정되지만 분명치는 않다. 그렇지만 현재의 고고학적인 자료로 볼 때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성 되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조선시대에 이르러는 대규모의 당간이나 당간지주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단지 이전 시대의 것을 일부 수리하여 재사용하기도 하였다. 새로 건립된 경우에는 아주 작은 규모의 문양장식이 없는 소박한 형태의 것이다.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 중창한 사찰에 그 흔적이 일부 남아 있는 정도이다.

◈ 괘불석주

한편 조선시대에 이르러 나타난 커다란 변화는 당간을 세우던 위치가 사찰의 입구에서 옮겨져 각 사찰의 불전 앞에 세워지고 있다. 즉 사찰의 불전 앞에는 문양이 새겨지지 않은 소박한 형태의 자그마한 돌기둥이 서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가 있다. 이를 괘불석주라고 한다.

괘불석주는 당간지주와는 다른 용도로 세워졌다. 즉 야외에서 많은 대중을 모아 놓고 법회를 열 때 사용된 것이다.

이 괘불석주에다가 긴 장대를 세워 고정시키고는 여기에 괘불(괘불은 매달 수 있도록 제작한 불화(탱화)를 말한다.)을 높이 걸어 법회를 열었다.

괘불석주에는 용문양(여주 흥국사), 호랑이문양(진주 청곡사)이 새겨지는 경우도 있으며, 또한 시주자나 건립연대(여주 흥국사, 영천 은해사, 부안 개암사) 등이 기록되는 경우도 있다.

괘불대는 금당의 뒤편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보통인데 큰 것은 높이가 16.5m(하동 쌍계사)나 되는 것도 있다. 조선시대 괘불석주의 예를 몇 가지만 들어보자면 용천사(전남 함평군) 대웅전 앞에 세워진 괘불석주는 높이가 1.1m에 불과한데 숙종 14년(1688)에 건립되었다. 또한 도갑사(전남 영암군) 대웅전 앞에 세워진 높이 1.2m의 괘불석주는 숙종 3년(1677)에 건립된 것이다.

※ 자료 출처 : 우리문화 우리역사/ 공석구저 / 도서출판 보성 (p179 ~ 183에서 요약한 내용)
출처 : 영광군문화관광해설가
글쓴이 : 로즈마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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